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고슬라비아 전쟁 (문단 편집) === 내전의 발단 -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의 연방 탈퇴 === || [[파일:티토 장례식.jpg|width=100%]] || || 티토의 장례식 || [[1980년]] 5월 유고슬라비아를 안정적으로 통치해 온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가 사망하면서 티토 집권 아래 잠재되어 있었던 민족과 지역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티토 사후 유고슬라비아는 6개 공화국의 대표들이 위원회를 구성하여 각 공화국 출신들이 임기 1년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집단 지도 체제로 개헌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들면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도브리카 코시치 등 세르비아계 출신 정치인들의 공작 아래 집단 지도체제는 유명무실화된 채 세르비아의 연방 내 권력 독점과 중앙 집권화로 흘러갔고, 결국 연방내 구성국들 중 국력이 가장 강성했던 세르비아는 연방 내 다른 공화국들을 차별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1991년 크로아티아 대표인 [[스테판 메시치]]가 연방의 다음 대통령을 맡았지만 연방의 실권은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대통령이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쥐고 있었기에 그냥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그 해에 크로아티아가 연방을 탈퇴하면서 메시치도 사임했다. 이후 메시치는 크로아티아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프라뇨 투지만]]이 대통령 재임 중 암으로 병사하자 크로아티아의 제2대 대통령도 역임했다.][* 티토의 노력에도 정치, 군인, 경찰, 공무원 등 사회의 각 분야에 세르비아계가 요직을 상당수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경제에선 슬로베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세르비아계보다 우위에 있었다. 정치 기득권층인 세르비아계와 경제 기득권층인 크로아티아계가 서로 대립하게 될 건 자명했다.] 그러나 새 정부의 경제 정책은 [[오일쇼크]]로 인한 성장저하와 1982년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외채 폭증으로 일어난 경기침체, 그리고 물가 상승에 무기력했다. 그나마 외채 문제는 제3세계의 지도국이라는 타이틀 덕택에 상당부분 탕감을 받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200억 달러가 넘는 외채를 끌어안고 있었으며 매년 2배가 넘는 물가상승과 10% 이상의 실업률을 기록하며 경제성장이 정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외채 위기는 또한 1950~70년대 당시에 드러나지 않았던 경제의 지역별 불균형 발전문제를 쟁점화했다.[* 1세계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헝가리가 바로 근처에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해 1990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9107달러로 포르투갈을 뛰어넘어 선진국에 준하는 경제력을 자랑했던 반면에, 북마케도니아는 2354달러에 그쳐 1인당 국민소득이 1/4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 격차도 4배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전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던 티토 격하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고 지식인들은 물론 각 공화국의 지도자들이 민족주의를 내세워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키거나 민족주의자들이 지도자로 등극하게 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각 공화국 간의 갈등으로 정치적인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물론 매년 수백만 명 가량의 해외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유고슬라비아 곳곳으로 놀러와 휴양을 즐기거나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올림픽]]을 열거나 내전 시작 1년 전인 1990년에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개최하는 등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민족주의]]와 [[지역이기주의]]로 점점 분열되어 가고 있었고, TV방송과 신문을 비롯한 매스미디어도 민족주의자들의 차지가 되는 바람에 상대 공화국과 자치주에 경제위기의 책임을 몰면서 국론분열에 일조했다. [[1989년]] [[동유럽 혁명]]이 일어남에 따라 동유럽의 공산 독재 정권이 연쇄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하고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유고슬라비아도 대세에 따라 공산당의 일당독재체제가 슬로베니아의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탈퇴로 붕괴하였으나, 오히려 이러한 정치적 분열에 의한 붕괴는 민족 간의 갈등 해소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우선 당시에 막 세르비아 공산당 서기장 및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집권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부터가 시대상을 이용해서 코소보와 몬테네그로, 보이보디나 공산당 서기장 자리를 친 밀로셰비치 인사로 채웠으며 이에 대응하여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과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에서도 민족주의 열풍이 강화되었다. 이후 [[1990년]] [[12월 23일]]의 선거에서 각 공화국은 [[민족주의]]를 앞세운 정당들이 압승을 거두었으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각 [[구성국]]은 지역 경찰력으로 위장한 군 병력 창설 및 독자적 외교 행보를 하면서 연방정부의 대표성은 급속히 무너져 갔다. 즉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1991년]] [[6월 25일]]에 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각각 슬로베니아 공화국과 크로아티아 공화국을 선포하며 연방에서 탈퇴하는 [[분리주의|분리]] [[독립]]을 선언하였다. 연방 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 선언을 격렬하게 비난하였고, 이에 따라 세르비아 주도의 연방정부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진압하기 위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병력을 파견하면서 유고슬라비아는 사실상 내전 상태로 돌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